"저 할머니는 얼굴이 복이야"

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"얼굴 복스럽다"는 말을 자주 듣는 분이셨습니다. 볼이 통통하고,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 있고, 입꼬리가 늘 살짝 올라가 있는 얼굴. 제가 관상에 관심 갖기 시작한 20대 초반, 할머니 얼굴을 유심히 관찰해본 적이 있습니다.

관상책에 나온 "복있는 관상"과 일치

  • 이마 - 넓고 둥글며 상처가 없음 (초년운·학문운)
  • - 크지 않지만 맑고 따뜻함, 흰자가 탁하지 않음
  • - 콧방울이 둥글게 잘 발달 (재물운)
  • - 크고 입꼬리 살짝 올라감 (말년운·의식주)
  • - 귓불이 두툼하고 늘어짐 (장수·복덕)
  • - 둥글고 살집 있음 (노후 안정)

관상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조합이었습니다. 그런데 진짜 궁금한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. 정말로 복이 많으셨을까?

할머니의 실제 인생

객관적으로 보면 할머니 인생은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. 한국 전쟁 중 피란, 20대에 남편(우리 할아버지) 돌아가심, 자식 넷을 혼자 키우심, 40대에 사업 망함, 50대에 큰아들(제 삼촌) 사고로 먼저 보내심. "복이 많다"는 얼굴과는 정반대의 인생사였습니다.

그런데 왜 "복있다"고들 했을까

80살 넘은 할머니를 관찰하며 깨달았습니다. 할머니는 동네에서 가장 많이 웃는 분이셨습니다. 경비실 아저씨부터 마트 직원까지 다 할머니를 좋아했습니다. 할머니는 남의 흉을 절대 안 보셨고, 받은 호의를 꼭 갚으셨고, 누군가 어려운 상황이면 먼저 도움을 주셨습니다.

제가 "할머니, 인생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밝으세요?"라고 물었을 때,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. "힘들었지. 근데 불평한다고 나아지진 않더라. 웃으면 적어도 얼굴은 안 상하잖아."

내가 배운 관상의 본질

저는 이후 관상을 이렇게 이해하게 됐습니다. 복있는 얼굴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. 할머니가 60년 넘게 웃으며 사셨기에 입꼬리가 올라간 얼굴이 된 거고, 남을 돕고 살았기에 눈빛이 따뜻해진 거였습니다. 관상은 결과지 원인이 아닙니다.

지금 거울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. 내 얼굴은 내 지난 10년의 기록이구나.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살면 어떤 얼굴이 될까. 관상학은 "생긴 대로 산다"가 아니라 "사는 대로 생긴다"는 걸 가르쳐준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입니다.